연도별 문화인물

김수영(金洙暎)
1921∼1968 / 참여시인 《풀》을 노래한 시인.
  • 문화관광부는 1960년대 대표적 시인이며, 치열한 저항정신과 새로운 형식으로 자유와 삶을 노래한 시인 김수영(金洙暎 : 1921∼1968) 선생을 9월의 문화인물로 선정하였다. 1968년 그는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지만, 그의 시와 그의 문학적 표현들은 해방 이후의 한국 현대시의 흐름에 중요한 의미를 갖는 상징적 가치를 갖게 되었으며 '자유'는 삶과 문학에 있어 가장 중요하고 예민한 행복의 기준이 되었다.
생애 및 업적
  •  김수영은 1950년대와 1960년대를 통해 활약한 해방 이후의 대표적인 현대 시인이다. 그는 한국 현대시의 영역에서 시의 현대성을 가장 적극적이고 날카롭게 탐구한 시인으로 평가될 수 있다. 그의 초기 시는 초현실주의의 영향을 받아 전통을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난해한 성향을 띄었다. 그러나 4·19를 경험하면서 그의 시는 자유의 이념과 그 자유를 억압하는 체제, 그리고 소시민적인 비애를 실험적인 형식을 통해 반성적으로 성찰하는 시들을 발표했다.


     김수영의 시대는 혼란과 궁핍과 억압의 시대였다. 그는 식민지의 땅에 태어나 해방 직후의 이념적 혼란을 겪었고, 생사의 고비를 여러 차례 넘나들며 6·25를 겪었다. 4·19를 통해 사회현실을 적극적으로 대면하려 했지만, 5·16 이후 다시 시작된 정치적 억압은 자유의 공간을 확대하기 위한 그의 싸움을 어렵게 만들었다. 그는 평생을 궁핍과 방황과 고독 속에서 살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굴의 문학적 투지로 자신의 문학공간을 넓혀 나갔다. 자유와 민주를 표방한 4·19의 정치적 이념과 김수영의 문학적 성취는 떼어놓을 수 없는 상관성을 가진다. 그래서 정치현실에 대한 문학의 실천적 책무를 강조하는 문학 경향을 선도한 시인으로, 그리고 닫힌 사회와 맞섰던 비판적 지식인의 전형으로 평가받아 왔다. 하지만, 김수영의 문학사적 업적은 단순히 그가 사회현실에 대해 비판적인 시를 썼다는 문제에 한정될 수 없다. 김수영의 시가 그 이후의 한국현대시에 미친 가장 결정적인 기여의 하나는 시와 삶의 관계에 대한 새로운 문학적 인식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시가 나날의 일상적 생활의 공간으로부터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그 한가운데서 쓰인다는 생각이 그것이다. 그 생각은 그로 하여금 전통적인 서정시의 형식을 거절하고 기존의 서정시의 관념으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과감한 실험을 하게 만들었다.


     김수영은 생활인으로서의 자신의 실존적 모습을 드러내고 그 안에서 설움과 절망, 그리고 자유의 꿈을 노래했으며, 이러한 시인 의식이 새로운 시형식을 열게 만들었다. <시와 삶의 일치>라는 김수영 시의 중요한 성과는 시의 정신과 형식의 두 가지 방향 모두에서 드러난다. 그래서 김수영의 시로부터 사회 현실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문학 경향과 문학적 자유의 가능성을 시언어의 영역에서 극한까지 밀고 나가는 노력이 동시에 흘러나올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김수영을 <자유의 시인>이라고 말할 때 그것은 단순히 이념적인 차원의 지칭이 아니라, 새로운 문학의 가능성을 실천하는 진정한 전위적 시인이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1968년 그는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지만, 그의 시와 그의 문학적 표현들은 해방 이후의 한국현대시의 흐름에 중요한 의미를 갖는 상징적 가치를 갖게 되었다. 김수영에 의해서 자유는 삶과 문학에 있어 가장 중요하고 예민한 행복의 기준이 되었다. 그리하여 김수영은 지금도 낯선 문학적 모험을 추구하려는 사람들에게 가장 준열한 정신의 척도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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