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도별 문화인물

맹사성 (孟思誠)
1360~1438 / 고려 말 조선 초의 재상
  • 문화관광부는 조선 세종대의 명재상이자 음악가인 맹사성(孟思誠, 1360∼1438)선생을 6월의 문화인물로 선정하였다.
생애 및 업적
  •  맹사성(孟思誠:1360~1438), 조선 세종대의 향악의 권위자, 청백리로 이름 높은 명재상 맹사성 선생은 1360년(고려 공민왕 9년) 지금의 개성 근교 농촌에서 아버지 맹희도(孟希道)와 어머니 홍양조 사이에서 태어났다. 5세에서 10세 사이에 한산을 거쳐 지금의 아산시 배방면 중리(행단)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선생은 어렸을 때부터 효성이 지극하여 10세 되던 해에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자 7일간 물한모금 마시지 않고 어머니를 추모하며 3년 동안 묘막생활을 하였다. 27세의 젊은 나이로 선생은 문과에 장원급제하여 춘추관검열이 된데 이어 전의시승, 기거랑, 우헌납 등의 벼슬을 차례로 역임하였다. 42세 되던 해에는 공주목사가 되었고 47세에 이조참의에 임명되었다.


     1407년에는 예문관제학으로 있으면서 세자(양녕대군)의 스승이 되기도 하였고 1412년 풍해도(황해도) 도관찰사로 임명되었을 때에는 하륜이 악보에 밝은 선생을 서울에 머물러 악공을 가르치도록 아뢰어 그대로 시행되는 등, 음악의 천재적 소질을 인정받아 박연과 함께 조선 초기 음악을 정리하였다. 1416년에 이조참판과 예조판서가 되었고 1417년에는 아버지의 병환이 중해지자 태종이 선생을 충청도 도관찰사로 임명, 부친을 간호케 하는 편의를 제공하고 친히 약까지 지어주기도 하였다. 1418년 부친상을 당하자 나라에서는 효자정문을 세우고, 한신축동에 효자비를 세웠다. 1419년 세종대왕이 즉위하면서 유능한 관리등용을 위하여 사심이 없고 청렴한 선생을 이조 판서에 임명하여 인재등용을 꾀하였다. 1425년에는 문신으로는 최초로 삼군도진무가 되었다. 1427년 나이 68세에 우의정으로 임명되었고 같은 해에 간신들의 상소로 오해를 받아 우의정직을 파면 당하였다가 혐의가 풀려 다시 우의정 자리를 되찾는 일도 있었다. 1431년에는 좌의정으로 임명되었으며 1435년에는 늙어서 국사와 왕을 모시는 일을 못하겠다고 간청하여 좌의정과 모든 부직을 그만 두었고, 1438년 나이 79세로 서거하였다. 장례 때 세종대왕은 모든 국정을 중단하고 문무백관을 거느리고 거애하기도 하였다.


     선생은 태종실록·고려사·팔도지리지·신창경제육전 등을 완성하였으며 근천장가사를 개수하는 등 많은 업적을 남겼다. 특히 향악의 권위자로서 조선 초기 우리 음악의 기초를 닦았으며 평생을 검소하고 청렴하게 살았다. 이러한 선생의 지극한 효성과 청백리 정신은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 제시해 주는 바가 크며, 가슴 속 깊이 새겨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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