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도별 문화인물

전체 : 178 페이지 : 16/ 18

 전형필의 본관은 정선(旌善), 호는 간송(澗松)이며, 서울 종로에서 중추원의관 전영기(全泳基)와 밀양 박씨(朴氏) 사이의 2남 4녀 중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증조부 때부터 배우개(지금의 종로4가) 중심의 종로일대의 상권을 장악한 10만석 부호가의 상속권자로 휘문고보를 거쳐 일본 와세다 대학 법과를 졸업했다. 대학졸업 직후인 25세 때(1930년)

 갑오경장을 치르고 새 물결로 탈바꿈하느라 소용돌이치는 격동기에 태어나, 5살 때부터 한문공부를 시작하여 거의 독학으로 깨쳤으며 10살 전후부터는 역사, 산술, 일본말 등 새 학문 탐구에 심취했다. 늦깎이로 21살 때 용담 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1925년 29살 때 연희전문학교를 졸업했다. 학교 다니는 동안 1등밖에 모르는 공부벌레로 미국 유학자

 고구려시대 거문고의 제작자이며 관리 왕산악에 관한 역사적 기록은 '삼국사기(三國史記)'에 다음과 같은 짧은 내용이 그의 행적에 대한 역사적 기록의 전부이다. 거문고의 제작에 관해 신라고기(新羅古記)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처음 진(晉)나라 사람이 일곱 줄의 현악기를 고구려에 보내왔는데, 고구려사람들은 그것이 악기인줄은 알았지만 그 악기의 성음

 심훈의 문학적 활동은 3.1운동에서 시작된다. 당시 경성제일고보 4학년에 재학 중이던 그는 3.1운동에 가담하여 투옥되었고, 이때 옥중에서 비밀리 부쳐진 편지 <어머니께 드리는 글월>에 그의 문학적 재질이 담겨있다. 출옥 후 중국으로 유학의 길을 택한다. 처음에는 일본으로 가고자 했으나 배일(排日) 사상에 충만된 집안의 반대로 좌절되고

 신라 말의 승려이며, 풍수설의 대가, 성은 김씨, 15세에 출가하여 월유산 화엄사(華嚴寺)에서 수도하였다. 그 뒤 유명한 사찰을 다니면서 수행하였고 846년 (문성왕 8년)에 전남 곡성 동리산(桐裏山)의 혜철(惠徹) 선사로부터 법문을 듣고 선법(禪法)의 오묘한 이치를 깨달았다. 중국 남돈선(南頓禪)을 받아들인 혜철(惠徹)의 가르침을 토대로 도선은

 본관은 인동(仁同), 호는 열운(洌雲)이며, 서울출신으로 1906년 한성외국어학교 한어과, 1911년 사립정리사(精理舍, 數理專門)를 졸업 하고 교육계에 종사하기 시작하였다. 선생은 1908년부터 1911년 사이 주시경(周時經)의 문하에서 국어학을 연 구, 나라 사랑의 정신과 학문의 기초를 다졌으며, 1911년에는 사립정리사(精 理舍, 數理專門)

 본명은 승진(勝進), 호는 우석(愚石)이며, 서울출신으로 1923년 양정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1927년 일본 동경 니혼대학예술과를 중퇴하였다. 선생은 순수연극보다는 대중연극에 가까운 연극인으로서 희극을 주로 썼고 역사극 연출에 능하였다고 한다.  그는 1925년에 토월회(土月會)간부로 연극계에 투신한 뒤, 1927년에 극단 산

 1903년 경기도 파주에서 아버지 정규원과 어머니 죽산 박씨 사이에서 3형제 중 맏아들로 태어난 선생은 일제의 탄압 속에서도 죽음을 각오하고 지속적인 우리말 연구와 한글사랑으로 민족정신을 지킨 독립 운동가이자 한글학자이다. 연희전문학교에서 문학을 전공하고 1925년 함남 함흥 영생여자고등보통 학교 교사로 부임하여 민족교육 보급을 위해 틈틈이 우리

 충남 홍성에서 아버지 한천오와 어머니 김씨 사이에서 6남매 중 장남으로 출생한 한성준 선생은 6, 7세 때에 외조부 백운채에게 춤과 장단을 처음 배웠고, 이후 서학조에게 줄타기와 각종 민속예능을 학습하는 등 일찍이 예인의 길로 들어섰다. 선생은 어릴 적부터 춤과 장단, 줄타기 등 민속예능에 출중한 재능을 보여 동네에서 어릿광대로 불리었고, 홍성을

 아버지 윤득주와 어머니 최성의 사이에서 함경북도 정평에서 태어난 윤봉춘은 주로 회령에서 성장했으며, 회령공립보통학교에 다니는 동안 나운규와 친구로 만나 그의 영향으로 영화, 연극 등에 관심을 가지는 한편, 학생신분으로 독립운동에 참여하게 되었다. 선생은 명동중학교 재학시절 북간도와 회령을 오가며 독립신문 배달과 독립선언서 제작 등 독립운동을 하였

검색
빠른 이동 메뉴
  • 주소 : (03060) 서울시 종로구 종로구 율곡로 33 안국빌딩 7층
Copyright © KCDF.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