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도별 문화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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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용(鄭芝溶) : 1902-?, , 이상(李箱)의 시를 실어 그를 시단에 등장시켰으며, 《문장(文章)》을 통해 조지훈(趙芝薰)·박두진(朴斗鎭)·박목월(朴木月)의 청록파(靑鹿派)를 등장시킴. 섬세하고 독특한 언어를 구사하여, 한국 현대시의 신경지 개척. 시에는 《향수(鄕愁)》 《압천(鴨川)》 《이른봄 아침》 《바다》 등이

 도산 안창호(1878-1938)는 우리나라 근대민족운동의 큰 지도자였으며 또 뛰어난 민족주의 사상가였다. 그는 우리 겨레가 일제의 침략과 지배 아래 고통 받고 있을 때 위기에 처한 나라를 지키고 또 독립을 되찾기 위한 구국독립운동에 앞장섰다. 그는 한말에는 독립협회에 가담해 활동했고 미국에서 공립협회를 조직해 지도했으며 다시 국내로 돌아와서는 비

1939년 문예지《문장(文章)》에 의해 시단에 등단. 박목월(朴木月)·조지훈(趙芝熏) 등과 함께 청록파 시인으로 활동하였으며, 자연과 신의 영원한 참신성을 노래하였을 뿐 아니라 도덕혁명과 인간혁명을 지향하는 등 큰 발자취를 남겼음. 만해·육사 등의 선비정신과 동행하면서 1960년대 김수영, 신동엽, 고은 등을 낳은 선구자적인 시인임

 보이스카우트 전신인 조선소년군을 창설한 소년운동의 선구자로서 일제 식민통치아래서 소년운동과 병식교육을 통하여 애국정신을 배양함으로써 국권회복의 기초를 다진 교육자이자 독립 운동가이다. 아버지 조중인과 어머니 유씨 사이에서 태어난 조철호 선생은 유년시절 집에서 한학을 공부하다가 16세 때인 1906년 구한국 무관학교에 입학하였으나, 1909년 폐교

 널리 알려지기로는 송흥록이 전북 남원군 운봉면 화수리 비전마을에서 출생하였다고 하나, 한편으로는 익산군 함열읍 곰개(熊浦)에서 태어나 성장하였을 가능성이 학계에 보고되어 있다. 송흥록은 어린 시절에 소리의 길에 들어서서 '소년명창'으로 이름을 날렸고 많은 노력을 기울여 고수관, 염계달, 모흥갑과 아울러 시대를 대표하는 명창이 되었다. 송흥록은 민

 이익(李瀷)은 1681(숙종 7)~1763(영조 39), 조선후기의 실학자로 본관은 여주(驪州), 자는 자신(自新), 호는 성호(星湖), 사간원 대사간을 지낸 아버지 이하진(李夏鎭)과 어머니 권씨(權氏)사이에서 평안도 운산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이하진(李夏鎭)이 1680년(숙종 6) 경신대출척(庚申大黜陟)때 진주목사로 좌천되었다가 다시 파직되고

 석주명(石宙明) : (1908.11.13 ~1950.10.6), 나비학자·교육자, 평안남도 평양시 (平壤市) 이문리에서 광주석씨(光州石氏) 평양파(平壤派)의 30대 손인 아버지 석승서(石承瑞)와 어머니 전주김씨(全州金氏) 김의식(金毅植)의 3남 1녀중 2남으로 태어났다. 3.1운동에 자극받아 민족정신에 눈 뜬 그는 평양의 숭실고등보통

 일제치하 민족저항시인(詩人)이며 독립운동가, 본관은 경주(慶州), 아호는 상화(尙火)· 상화(想華)·무량(無量)·백아(白啞)·백아(白亞) 등이 있다. 대구광역시 서문로 12번지에서 아버지 이시우(李時雨)와 어머니 김신자(金愼子, 金海金氏) 사이의 4형제(相定·相和·相佰&m

 안향(安珦), (1243 ~ 1306), 고려시대 학자, 명신(名臣), 初名은 유(裕), 자는 사온(士蘊), 호는 회헌(晦軒), 본관은 순흥 안씨(順興安氏), 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 출신 아버지는 밀직부사 (密直副使)를 지낸 부(孚)이며 어머니는 강주 우씨(剛州禹氏)이다.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글 읽기에 힘쓴 안향은 18세(1260년, 원종 1년)

 신윤복(申潤福) (1758 ~ ?, 일명 申可權)은 조선후기 풍속 화가로 자는 입부(笠父), 호는 혜원(蕙園), 본관은 고령(高靈)이며 중인(中人)출신의 화가 집안으로 부친은 신한평 (申漢枰) 모친은 홍천피씨(洪川皮氏)이다. 신윤복에 대한 문헌상의 기록은 몹시 희귀하여 관찬문서나 개인 문집류에서 찾아보기가 어려우나 그에 관한 기록과 연구를 종합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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