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산
도산 안창호(1878-1938)는 우리나라 근대민족운동의 큰 지도자였으며 또 뛰어난 민족주의 사상가였다. 그는 우리 겨레가 일제의 침략과 지배 아래 고통 받고 있을 때 위기에 처한 나라를 지키고 또 독립을 되찾기 위한 구국독립운동에 앞장섰다. 그는 한말에는 독립협회에 가담해 활동했고 미국에서 공립협회를 조직해 지도했으며 다시 국내로 돌아와서는 비
1939년 문예지《문장(文章)》에 의해 시단에 등단. 박목월(朴木月)·조지훈(趙芝熏) 등과 함께 청록파 시인으로 활동하였으며, 자연과 신의 영원한 참신성을 노래하였을 뿐 아니라 도덕혁명과 인간혁명을 지향하는 등 큰 발자취를 남겼음. 만해·육사 등의 선비정신과 동행하면서 1960년대 김수영, 신동엽, 고은 등을 낳은 선구자적인 시인임
보이스카우트 전신인 조선소년군을 창설한 소년운동의 선구자로서 일제 식민통치아래서 소년운동과 병식교육을 통하여 애국정신을 배양함으로써 국권회복의 기초를 다진 교육자이자 독립 운동가이다. 아버지 조중인과 어머니 유씨 사이에서 태어난 조철호 선생은 유년시절 집에서 한학을 공부하다가 16세 때인 1906년 구한국 무관학교에 입학하였으나, 1909년 폐교
이익(李瀷)은 1681(숙종 7)~1763(영조 39), 조선후기의 실학자로 본관은 여주(驪州), 자는 자신(自新), 호는 성호(星湖), 사간원 대사간을 지낸 아버지 이하진(李夏鎭)과 어머니 권씨(權氏)사이에서 평안도 운산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이하진(李夏鎭)이 1680년(숙종 6) 경신대출척(庚申大黜陟)때 진주목사로 좌천되었다가 다시 파직되고
일제치하 민족저항시인(詩人)이며 독립운동가, 본관은 경주(慶州), 아호는 상화(尙火)· 상화(想華)·무량(無量)·백아(白啞)·백아(白亞) 등이 있다. 대구광역시 서문로 12번지에서 아버지 이시우(李時雨)와 어머니 김신자(金愼子, 金海金氏) 사이의 4형제(相定·相和·相佰&m
안향(安珦), (1243 ~ 1306), 고려시대 학자, 명신(名臣), 初名은 유(裕), 자는 사온(士蘊), 호는 회헌(晦軒), 본관은 순흥 안씨(順興安氏), 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 출신 아버지는 밀직부사 (密直副使)를 지낸 부(孚)이며 어머니는 강주 우씨(剛州禹氏)이다.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글 읽기에 힘쓴 안향은 18세(1260년, 원종 1년)
신윤복(申潤福) (1758 ~ ?, 일명 申可權)은 조선후기 풍속 화가로 자는 입부(笠父), 호는 혜원(蕙園), 본관은 고령(高靈)이며 중인(中人)출신의 화가 집안으로 부친은 신한평 (申漢枰) 모친은 홍천피씨(洪川皮氏)이다. 신윤복에 대한 문헌상의 기록은 몹시 희귀하여 관찬문서나 개인 문집류에서 찾아보기가 어려우나 그에 관한 기록과 연구를 종합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