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산
김창조(金昌祖) : 1856~1919. 한말·일제강점기의 가야금산조의 명인. 호는 樂聖. 시나위 가락에 판소리 가락을 도입하여 오늘날과 같은 가야금산조의 틀을 만들어, 대표적인 한국의 유산으로 만듦. 해금을 비롯하여 대금, 퉁소 등 모든 악기에 능통하였고, 김창조 가야금산조 탄생을 계기로 거문고, 대금, 해금, 단소, 피리, 아쟁,
이 첨(李 詹) : 1345-1405. 고려 말, 조선 초기의 문신. 호는 쌍매당(雙梅堂). 1375년 간관(諫官)으로 실권자 이인임을 탄핵하다 10년간 유배생활을 함. 1398년 조선왕조의 관리로 복직되어 1403년 예문관 대제학에 올랐음. 문장과 글씨가 뛰어나 하륜(河崙) 등과 함께 <삼국사략(三國史略)>을 찬수(撰修) 하였으며,
양팽손(梁彭孫) : 1488-1545, 본관은 제주(濟州). 자는 대춘(大春). 호는 학포(學圃). 조광조(趙光祖) 등과 함께 사가독서(賜暇讀書)를 하고, 1519년 교리(校埋)로 재직 중 기묘사화(己卯士禍)로 삭직되었으나 1537년 김안로(金安老)가 사사(賜死)된 뒤 복관(復官)됨. 글씨를 잘 썼고 이조판서(吏曹判書)에 추증되었으며, 능주(綾州
위암 장지연(韋庵 張志淵)은 구한말 대표적인 애국계몽사상가의 한 사람으로 개신유학에 입각한 개화, 자강사상가였다. 또한 그는 언론을 통해 개화와 구국의 경륜을 편 언론인으로서 활동적 지식인이었으며 역사가로서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하여 후세에 민족주의 사가들이 활동할 수 있는 토대를 확보해 준 사학자였다. 그의 생애는
국어문법을 바로세우고 한글 가로쓰기를 이루는 등 한글의 과학화와 국어교육에 공헌하였으며, 일생을 한 결같이 우리말, 글 사랑을 실천하고 계몽하여 민족문화 발전에 큰 발자취를 남겼다. 어려서부터 명석하였고, 한일합방 후 주시경 선생이 가르치는 조선어(한글)강습원에 나가기 시작하였다. 이후 우리 말글 연구에 대한 큰 포부를 품게 되었으며 우리말과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