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별 문화상징

대동여지도
선정취지 및 필요성
  • 대동여지도는 조선후기에 고산자 김정호가 제작하였으며, 한국의 고지도 중에서 가장 문화 상징성이 강한 대표적인 지도라고 할 수 있다. 대동여지도는 국토의 산수체계를 일목요연하게 파악할 수 있는 관점을 제시해주며, 백두대간을 비롯한 한국의 전통적인 산맥인식과 산줄기체계가 집약되어 있는 성과이기도 하다.
역사적 배경 및 상징물의 의미
  • 〈대동여지도〉는 1834년(순조 34)에 김정호 자신이 제작한 〈청구도 靑邱圖〉를 증보 수정한 대축척 지도로 분첩절첩식(分帖折疊式) 지도첩이다. 우리나라의 남북을 120리 간격으로 22층으로 구분하고, 동서를 80리 간격으로 끊어 19판으로 구분했다. 목판본으로 축척은 약 1/160,000이다. 〈대동여지도〉의 제1층에는 지도의 제목과 발간연도 및 발간자를 명시하고, 본도와는 별도로 상세한 서울의 도성도(都城圖)와 경조오부도(京兆五部圖)를 싣고 있다. 〈대동여지도〉는 산계(山系)와 수계(水系)를 가장 성공적으로 나타낸 지도이다. 일반지도에서는 지형표시에서 개개의 산지나 평지를 있는 그대로 나타내는 것이 보통이나 〈대동여지도〉에서는 개개의 산보다 산계 즉 산줄기를 표시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산지와 산지가 떨어져 있더라도 그 중간을 연결하는 분수계(分水界)가 있으면 이 두 산지는 연속되는 산줄기로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이 산줄기 사이에 자연스럽게 발달하는 수계를 자세하게 나타내고 있다. 산지를 개별적인 독립된 산으로 보지 않고 어떤 체계를 가진 산줄기로 보려는 시도는 묘도(墓圖)에서 널리 쓰여 온 전통이다. 묘도의 대부분은 풍수(風水)사상에 기초를 두고 있어서 산줄기와 물줄기의 도식적 표현은 묘도의 필수적인 것이었다. 〈대동여지도〉에서 산계와 수계의 중시, 특히 분수계를 연속되는 산줄기로 표현한 점은 묘도와 일맥상통하는 점이다. 그러나 묘도에서는 국지적인 좁은 지역에 한정되어 있으나 〈대동여지도〉는 전국적인 규모라는 데 큰 차이가 있다. 〈대동여지도〉에서는 산계를 단순한 선으로만 표시한 것이 아니고 선의 넓고 좁음의 형태를 통하여 산맥과 산의 모양·크기 및 분수령과 하천유역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도록 표현한 일종의 '산악투영도법(山岳投影圖法)'을 사용하고 있다. 우리나라 전도에서 개개의 산지가 아니고 산맥을 표시하는 전통은 조선 초기에 만들어진 이회(李)의 〈팔도지도〉, 정척(鄭陟)과 양성지(梁誠之)의 〈동국지도〉(1463), 그리고 18세기 중엽 정상기의 〈동국지도〉등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이 지도들은 모두 필사본이고, 또 〈대동여지도〉에 비교하면 소축척지도이다. 김정호는 이러한 전통을 바탕으로 목판 인쇄를 통해서 새로운 산계의 표시를 시도한 것이다. 항간에 전해지는 김정호의 옥사설, 그리고 〈대동여지도〉와 목판을 압수당했다는 설은 근거 없는 것이다.
다른 나라의 유사 사례
  • 중국과 일본에 다양한 고지도가 있지만 대동여지도와 같은 풍수사상에 기초를 둔 산줄기 표현방식과 산악투영도법으로 국토전체를 그린 전도는 유일한 것이다.
기대효과
문화사업 및 비영리 분야에서의 활용방안
  • 〈대동여지도〉는 판본인 관계로 비교적 많이 전해지고 있으며, 현재 보물 제850호로 지정되어 있다. 목판 중 1매가 숭실대학교박물관에 소장되어 있고, 목판본지도는 국립중앙도서관에, 필사본은 규장각외 여러 곳에 있다.
참고자료
  • 이우형, 『대동여지도와 대동여지도의 독도』, 광우당,1990 원경렬, 『대동여지도의 연구』, 성지문화사,1991 윤홍기, 「대동여지도의 지도족보론적 연구」, 『문화역사지리』 3, 1991 <최원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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