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별 문화상징

온돌
선정취지 및 필요성
  • 구들은 가장 원초적인 문화유산이면서도 희소성이 없기에 ‘화끈한’ 주목거리에서 벗어난다. 그러나 구들만큼 민족생활양식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 문화유산은 없을 것이다. 구들의 중요 특징은 의식주 생활풍습 가운데서 전통의 현대적 적응력을 가장 잘 보여준다는데 있다. 즉, 구들은 힘은 그 ‘장기지속성’에 있다. 수천 년 세월을 변하지 않고 이어져 왔으며, 초현대적 생활에까지 이어져서 21세기로 온전히 넘어온 풍습이 드물 것이다.
역사적 배경 및 상징물의 의미
  • 선조들이 최초로 지은 집은 신석기시대에 땅을 파고 지은 움집이었다. 움집의 갖춤 새는 매우 단순하였다. 자갈이나 모래, 진흙 등을 깐 맨바닥이었다. 그 움바닥 중심부에는 예외 없이 화독이 설치되었다. 아직 구들은 출현하지 않았다. 그러나 서서히 지상으로 솟아오른 집다운 집이 출현한다. 움집에서 화덕 따위로 난방을 하던 수준 가지고는 지상가옥의 난방을 감당할 재간이 없어진다. 더욱이 혹독한 추위가 계속되는 만주벌판에서 나라를 건설해나가던 선조들이 다양한 구들을 개발하게끔 된다. 문헌상으로 구들을 처음으로 암시한 문서인 '신당서(新塘書)'와 '구당서(舊唐書)'를 보면, ‘가난한 사람들이 겨울을 나기 위해서 긴 갱(坑)을 만들어 따뜻하게 난방 한다.’고 하였다. 간단한 부뚜막에서 실내 일면 캉으로, 일면 캉에서 삼면캉으로, 삼면캉에서 전면 구들로 발달한 것으로 여겨진다. 구들의 고구려기원설이 확인되는 순간이다. 벽화무덤의 주인공들인 귀족들과 달리 고구려의 민중들은 ‘돈이 덜 드는 난방방식’인 구들을 택하였음이 분명하다. '신당서'와 '구당서' 기사처럼 ‘가난한 사람들이’ 겨울을 나기 위해서는 구들이 필수적이었음직하다. 반면에 귀족문화는 ‘신발 신는’ 입식과 ‘신발 벗는’ 좌식생활의 병존이었을 것이다. 즉 본격적인 온돌문화의 창시자를 ‘고구려의 민중들’이라고 결론 맺을 수 있다. 우리들이 누워 잠자는 구들에는 바로 고구려 민중들의 강골차면서서도 따스한 숨결이 서려있는 셈이다.
다른 나라의 유사 사례
  • 중국에는 구들과 달리 캉(坑)이 있다. 구들이 바닥 전부를 데운다면 캉은 실내의 한쪽에 벽돌을 쌓아 일부분만 덥게 한다. 구들이 전면적인 방바닥 난방이라면, 캉은 벽 일부만 난방 하는 형식을 취한다. 말하자면 페치카와 구들의 중간 성격을 지닌다. 캉과 구들은 그 기원은 같았을 것이다. 그러나 각기 다른 길을 걸어오면서 한국만의 독특한 구들문화를 탄생시킨 것이다.
기대효과
  • 펄펄 끓는 아랫목에서 산모가 몸을 푸는 곳, 추운 겨울날 할아버지의 입을 통하여 아버지에게, 아버지의 입을 통하여 자식에게 대를 이어가면서 구전의 역사가 펼쳐졌던 ‘쓰이지 아니한 역사’가 서술되던 ‘구술문화’의 현장, 그리고 사람이 마지막 운명을 다할 때 자손들의 손을 마지막으로 쥐던 곳........그러한즉 구들은 ‘우리민족의 영원한 태자리’라 부를 수 있는 것이니 구들의 문화상징화는 우리들의 영원한 탯자리를 부활시키는 것이기도 하다.
문화사업 및 비영리 분야에서의 활용방안
  • 구들은 단절되지 않고 이어지고 있다. 땔감 용구들, 연탄구들, 보일러와 전기를 쓰는 개량구들을 거쳐서 ‘온돌침대’마저 등장할 정도로 전통의 지속성을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자연친화적 에너지를 개발해야하는 시대에 구들의 무궁한 열 보존적 장치는 늘 새롭게 개발되면서 현대사회에도 능히 활용되고 있는 중이며 앞으로도 계속 새로운 구들문화가 개발될 것이다. 구들은 세계에서도 주목받는 에너지저장장치로 중국의 현대적 아파트에도 구들이 적극 보급되기 시작하였다. 따라서 구들의 한국 문화적 정체성을 길이 되새겨야할 것이다.
참고자료
  • 최영택,『구들』, 고려서적, 1989 <주강현>
관련이미지
빠른 이동 메뉴
  • 주소 : (03060) 서울시 종로구 종로구 율곡로 33 안국빌딩 7층
Copyright © KCDF. All Rights Reserved.